시창작강의 - (151) 인습적...
发布时间 :2023-11-03 11:12:33
시창작강의 - (151) 인습적 시각과 상상적 시각 - ② 사물을 보는 시각의 차이 그 아홉 가지 유형/ 시인 이형기
인습적 시각과 상상적 시각
② 사물을 보는 시각의 차이 그 아홉 가지 유형
여기서 우리들은 사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반성하며 점검해보자.
지금 우리 앞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고 가정하자. 그 나무를 바라보는 시각은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 차이를 단계별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이 나올 수 있다.
㉮ 나무를 그냥 나무로 본다.
㉯ 나무의 종류와 모양을 본다.
㉰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 나무의 잎사귀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 나무 속에 승화되어 있는 생명력을 본다.
㉳ 나무의 모양과 생명력의 상관관계를 본다.
㉴ 나무의 생명력이 뜻하는 그 의미와 사상을 읽어본다.
㉵ 나무를 통해 나무 그늘에 쉬고 간 사람들을 본다.
㉶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위의 아홉 가지 유형 중에서 당신의 경우는 어느 단계에 속하는가?
㉮에서 ㉱까지는 나무의 외형적 관찰이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일상적·상식적 차원에 있어서 ㉮와 ㉯ 정도의 눈으로 나무를 보고 있다. ㉰와 ㉱는 그보다 한 걸음 앞선 태도이긴 하지만 역시 나무의 외형적 관찰이므로 그다지 깊이 있는 관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에서 ㉴까지는 그렇지 않다. 이는 나무의 외형이 아닌 내면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래서 일상적·상식적 차원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무의 모습이 우리 앞에 드러난다. 나무의 생명력이라든지 또 그 생명력의 의미나 사상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대상이다. 그런데도 이 단계에서는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모두 나무의 모양으로 형상을 얻고 있다. 생명력이나 사상으로 바뀐 나무의 변용은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나무는 의미의 측면에서도 깊이 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와 ㉶의 단계에 이르면 나무는 다시금 비약적인 변용을 이루게 된다. ㉲~㉴의 단계에서는 그래도 아직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나무가 이번에는 자리까지 옮기게 된다. ‘나무 그늘에 쉬고 간 사람들’을 보게 될 때의 나무는 지금의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이미 다른 자리에 서 있다. 그 자리란 그렇게 쉬고 간 사람들이 쉬는 동안에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해본, 인생의 갖가지 사연이 얽혀 있는 자리이다.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보는 ㉶의 단계도 나무가 보다 발전적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이다. 연장선을 그어 확대하면 인생 만사와 우주의 삼라만상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이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인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이처럼 광대한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 기적을 낳는 원동력이 상상력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누구보다도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다.
상상력은 시인이 아닌 사람들도 인류 전체의 문화와 역사를 변혁시킬 만큼 엄청난 발견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발견이란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본다는 뜻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의 상상력은 만유인력의 발견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다.
만유인력은 사과의 낙화라는 현상 저쪽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다른 사람들은 앞서 말한 ㉮의 단계에서 나무를 그저 나무로 보고 무심코 지나쳤지만 뉴턴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사과의 낙하를 낙하 현상 그대로만 보지 않고 변용시켜 보았고 그래서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그러한 변용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물론 상상력이다.
다시 셰익스피어의 희극 구절을 빌리면 만유인력, 그리고 그 만유인력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우주의 어떤 차원의 질서는 ‘상상력이 알지 못하는 사물들의 모양을 드러내’ 우리 앞에 보여준 하나의 결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작 뉴턴은 직접 시를 쓰진 않았지만 풍부한 시적 상상력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이형기 시인의 시쓰기 강의,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다(이형기, 문학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